Elements- Line - kim heejo

ARTIST’S NOTE | 1

Elements- Line

2017 노트에서 발췌



선은 나의 사유를 전달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다.

생각이 몸의 리듬을 타고 바깥으로 이동할 때, 그 첫 자리에 선이 있다. 선은 단순한 윤곽이 아니라, 질감과 밀도, 속도와 압력을 품은 물질적 행위이며, 감각의 리듬과 정신의 긴장을 동시에 내포한다. 그것은 내면의 사유가 외부 세계로 옮겨지는 통로이자,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첫 번째 흔적이다. 그래서 선은 나에게 있어 드로잉 수행성의 기초이며, 내 존재가 세계와 맞닿는 가장 직접적인 언어다.

 
나의 움직임은 언제나 주어진 시공간의 제약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안에서 선은 무한한 변주를 가능하게 한다. 호흡의 길이, 손끝의 망설임, 압력의 차이는 선의 무게를 바꾸고, 그 무게는 속도와 리듬에 따라 감각의 결을 만든다. 선은 이렇게 반복과 편차 속에서 존재의 긴장을 드러낸다.
 
예술의 역사 속에서 선은 사물의 윤곽을 드러내고 공간을 나누며, 질서를 구축하는 구조적 언어로 사용되어 왔다. 누군가에겐 움직이는 점¹, 누군가에겐 산책의 궤적²이었다. 어떤 이들은 수직과 수평의 선으로 우주의 질서를 탐구했고³, 또 다른 이들은 선을 통해 형태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했다⁴. 이처럼 선은 감정과 사유, 구조와 질서를 표현해 온 기본 기호였다. 이 맥락은 내 선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으로만 남는다.
 
나의 선은 선행된 정의에서 출발하지만, 그 의미를 다시 조형하며 스스로의 언어를 구축한다. 그것은 이미 알려진 질서 안에서 발생하면서도, 그 질서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나에게 선은 단지 형태를 규정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유와 감각이 교차하는 수행적 흔적이며, 의식과 무의식, 정신과 육체가 맞닿는 자리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선은 나의 사고가 흐르는 궤적이자, 나와 세계가 관계 맺는 감각의 흔적이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동안, 선은 충동처럼 분출되기도 하고, 의식의 질서로 응집되기도 한다. 때로는 무의식의 흐름 속에서 솟아올라, 말로는 도달할 수 없는 내면의 진동을 수행한다. 그래서 선은 경계이면서 동시에 통로이고, 단절이면서 동시에 연결이다.
 
결국 선은 결과보다 과정에 가깝다. 순간적으로는 임시적이지만, 지나간 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의 흔적으로 남는다. 그 흔적은 통제와 해방 사이를 왕복하며, 내가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기록한다. 내 작업에서 선은 하나의 표식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질문과 응답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다음 형상과 형태를 예비하는 실행(act)이다.
 

 


Notes
  1. Wassily Kandinsky, Point and Line to Plane (1926): “A line is a point that has gone for a walk.”
  2. Paul Klee, Pedagogical Sketchbook (1925): “Drawing is like taking a line for a walk.”
  3. Piet Mondrian, through 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1930) and related writings on universal balance and absolute order.
  4. Pablo Picasso and Paul Cézanne, use of contour and structural line to deconstruct and reconstruct form (Cubist and Post-Impressionist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