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NOTE | 11
회화성에 대하여
2018 노트에서 발췌
Pictoriality: 회화성에 대하여
회화성은 단순히 ‘그림 같다’는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색과 선, 표면의 리듬이 하나의 질서로 호흡하며, 감각이 사유로 변환되는 긴장의 순간을 말한다. 회화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모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원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내가 회화성을 다룰 때, 그것은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가 표면 위에 드러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중세의 이미지는 상징적이었다. 화면은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신성한 질서를 드러내는 표면이었고, 그 안에서 인간은 아직 세계를 재현하지 않고 ‘감각의 신성’을 드러냈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다 빈치와 라파엘로는 원근법을 통해 눈을 설득하는 새로운 공간을 열었다. 그들의 회화성은 ‘창문처럼 열리는 세계’의 환영이자, 빛과 형태의 논리였다. 근대로 오면서 세잔은 감각의 구조를 탐구했고, 모네는 순간의 빛을 시간의 리듬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폴록의 화면에 이르러, 환영은 완전히 사라지고 회화성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표면 위에서 물질과 행위가 충돌하는 순간, 회화는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존재의 현상’으로 변했다.
BYR의 세계에서 회화성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억제, 집중, 조율의 형태로 변주된다. Prime Elements는 색과 형태를 구조적 질서로 환원하며, 회화성을 극도로 절제한다. 감각적 서술보다 사고의 언어가 앞서며, 표면은 하나의 기호적 공간이 된다. Quad에서는 그 절제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화면에 남은 브러시의 결은 묘사가 아닌 집중의 리듬이며, 반복되는 선의 움직임은 사유의 흔적처럼 남는다. OS 시리즈에서는 회화성이 다시 숨을 쉰다. 여러 심볼과 구조가 결합된 표면은 유기적으로 진동하며, 감각과 질서가 미묘하게 교차한다. 이때 회화성은 중심이 아니라 ‘조율된 보조’로 작동하며, 구조 안에서 감각의 잔향을 남긴다.
오늘날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회화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물감의 물리적 속성을 넘어, 감각이 구조로 변하고 구조가 다시 감각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드러내는 일이다. 회화성은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보이게 만드는 방식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디지털 화면에서도 표면의 리듬을 탐구하듯, 회화성은 시대를 초월해 감각의 논리를 새롭게 구성한다.
이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그림을 단순히 ‘예쁜 이미지’로 보지 않는다. 화면 속 색이 어떻게 숨 쉬는지, 선이 어떤 리듬으로 감각을 이끄는지, 표면이 어떤 긴장 속에서 사유를 일으키는지를 읽게 된다. 그 순간 관람자는 감상자가 아니라, 감각과 구조의 호흡을 해석하는 존재가 된다.
회화성은 시대마다 형태를 바꾸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각적 질서 속에서 존재가 어떻게 숨 쉬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BYR에서의 회화성은 억제되거나, 남겨지거나, 조율되며 — 그 모든 차이는 결국 존재의 구조가 감각으로 번역되는 방식을 찾아가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