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Circle - kim heejo

ARTIST’S NOTE | 10

White Circle

2018 노트에서 발췌




화이트는 색이라기보다 빛이 흩어지기 전의 상태, 감각이 형식으로 응결되기 전의 여백에 가깝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잠들어 있다. 나는 이 ‘화이트’를 세계가 형체를 얻기 직전의, 존재의 맨 처음 호흡으로 이해한다. 감각과 인식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태, 사유가 빛과 함께 태동하는 그 자리에 화이트는 머문다.

서클은 그 정적 속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움직임이다. 방향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곡선의 순환은 존재가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한 흔적이며, 중심과 가장자리가 서로를 바꾸는 구조다. 나는 그 원이 닫혀 있으면서도 열린, 하나이면서 다수인 세계의 모형이라고 느낀다. 그 궤도 속에서 인간의 의식과 세계의 리듬, 유한과 무한의 경계가 맞닿는다.

화이트와 서클이 만나면, 형태는 침묵 속에서 태어나고 다시 사라진다. 색이 사라진 자리에서 감각은 질서가 되고, 질서는 다시 감각으로 되돌아온다. 그 반복 속에서 세계는 갱신되고, 나는 그 순환을 통해 존재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지를 탐구한다.

BYR Prime Elements와 BYR OS의 조형은 이 화이트 서클에서 기원한다. 나의 선과 형태, 구조와 질서는 이 무(無)의 원 위에서 생겨나고 흩어지며, 다시 돌아온다. 화이트는 모든 색을 품고 있고, 서클은 그 잠든 색들을 되살리는 형식의 호흡이다. 나에게 화이트 서클은 시작이자 귀환, 그리고 존재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가장 단순한 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