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에서는 작가의 예술과 삶을 향한 태도, 작업을 펼쳐가는 과정과 그 과정들 속에서 탄생하는 다양한 생각들을 소개한다.
화이트는 색이라기보다 빛이 흩어지기 전의 상태, 감각이 형식으로 응결되기 전의 여백에 가깝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잠들어 있다. 나는 이 ‘화이트’를 세계가 형체를 얻기 직전의, 존재의 맨 처음 호흡으로 이해한다. 감각과 인식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상태, 사유가 빛과 함께 태동하는 그 자리에 화이트는 머문다.
2018 노트에서 발췌
회화성은 단순히 ‘그림 같다’는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색과 선, 표면의 리듬이 하나의 질서로 호흡하며, 감각이 사유로 변환되는 긴장의 순간을 말한다. 회화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모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원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내가 회화성을 다룰 때, 그것은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가 표면 위에 드러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변형(Transform)은 언제나 감지보다 먼저 작동한다. 그것은 결심이나 사건이 아니라, 인식이 스스로를 갱신하고 재조율하는 방식이다. 시간의 흐름이 조금만 어긋나도 감각은 곧바로 그 차이를 기록한다. 공기와 빛의 밀도, 걸음의 리듬, 호흡의 간격 속에서, 세계는 이미 조용히 다시 정렬되고 있다. 그 변형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지각의 내부 알고리즘이 스스로 균형을 바꾸는 미세한 조율이다.
2018-2025
내가 처음 ‘무한’을 생각했을 때는 아마 일곱 살 무렵이었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던 시절, 나는 흙을 파고, 떨어진 나뭇잎을 모으고, 그 사이를 기어 다니는 작은 생명들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흙을 파면 그 아래의 세계가 갑자기 드러났다. 눈에 보이지 않던 공간이 갈라지고, 그 속에 또 다른 층이 나타났다. 축축하고 차가운 흙의 냄새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부서져 내리는 감촉이 전부였다.
2019 노트에서 발췌